한국인의 밥상에서 된장찌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흔히 먹는 노란 콩 된장만이 장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산이 많은 강원도에서는 보리를 섞어 **'막장'**을 만들었고, 충청도에서는 메주를 거칠게 빻아 **'쩜장'**을 담갔습니다.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고 나는 곡식이 달랐기에, 장의 모습도 그 지역 사람들을 닮아 각기 다른 개성으로 진화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마트 진열대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러나 우리 음식 DNA 깊숙한 곳에 숨쉬고 있는 **지역별 이색 별미 장(Delicacy Jang)**의 세계로 떠나봅니다.
1. 강원도와 경상도의 투박한 힘, '막장'
이름 때문에 "막 만든 장"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막장의 '막'은 '금방' 또는 '지금 바로'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특징 및 제조법
일반 된장이 간장을 빼고 남은 건더기(메주)를 쓰는 반면, 막장은 간장을 빼지 않습니다.
- 재료: 메주가루에 보리밥, 밀, 엿기름 등을 섞어 만듭니다.
- 맛: 간장의 맛 성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색이 진하고(검붉은색), 단맛과 감칠맛이 훨씬 강합니다.
- 숙성: 2~3개월 정도 짧게 숙성시켜 먹습니다.
💡 맛의 포인트: 강원도 산골의 쌈밥집에서 나오는 거무튀튀하고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쌈장, 그게 바로 막장입니다. 배추나 고추를 찍어 먹을 때 최고의 궁합을 자랑합니다.
2. 충청도와 경기도의 거친 매력, '쩜장(빠개장)'
'쩜장'은 이름도 생소하지만, 한번 맛보면 그 식감에 반하게 되는 충청도와 경기 남부 지역의 향토 장입니다. 지역에 따라 '빠개장'이라고도 불립니다.
특징 및 제조법
메주를 곱게 빻지 않고 '대충 큼직하게 뚝뚝 쪼개서(빠개서)' 담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 재료: 쪼갠 메주에 소금물과 고추씨, 보리밥 등을 넣어 자박하게 담급니다.
- 식감: 콩 덩어리가 살아있어 씹는 맛이 일품입니다.
- 저염: 일반 된장보다 소금을 적게 쓰고 수분감이 있어 찌개보다는 쌈장이나 무침용으로 훌륭합니다.
3. 겨울철 입맛 도둑, '담북장'과 '집장'
오랜 시간 묵혀 먹는 된장과 달리, 계절의 별미로 빠르게 만들어 먹는 **'속성 장(Sokseong-jang)'**들도 있습니다.
| 구분 | 주요 특징 | 지역/문화 |
| 담북장 | 청국장과 비슷하지만 발효 시간이 조금 더 길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양념해 둠 | 경상도/충청도 등지. 청국장보다 냄새가 덜하고 보관성이 좋음 |
| 집장(거름장) | 여름철 채소(가지, 오이, 무)와 메주가루, 찹쌀풀을 섞어 퇴비의 열로 삭힘 | 전라도/충청도. 채소의 수분과 단맛이 어우러진 새콤 시큼한 별미 |
| 비지장 |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띄워 만듦 |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알뜰하게 영양을 섭취했던 서민들의 지혜 |
4. 왜 지역마다 장맛이 다를까? (DNA와 테루아)
와인에 포도가 자란 환경을 뜻하는 '테루아(Terroir)'가 있듯, 한국의 장에도 지역의 환경이 담겨 있습니다.
- 남쪽 지방: 날씨가 따뜻해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많이 써서 짭짤합니다. 대신 감칠맛을 위해 젓갈이나 보리 등을 섞습니다.
- 북쪽/산간 지방: 날씨가 서늘해 싱겁게(저염) 담가도 되며, 콩 본연의 맛이나 곡물의 구수함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다양한 장들은 각 지역의 조상들이 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최적의 생존 방정식'**이자, 획일화되지 않은 한국인의 **'다양성 DNA'**를 보여줍니다.
마치며: 사라져가는 맛의 유산을 찾아서
편리함 때문에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맛의 된장에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막장의 진한 맛이나, 콩알이 씹히는 쩜장의 식감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이어져 온 **'기억의 맛'**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지역 재래시장이나 향토 음식점을 찾아, 잊혀가는 우리 고유의 '장 맛'을 경험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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